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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12년간 유배생활 중「화전별곡」을 지은 조선전기 4대 서예가 자암 김구를 추모하는 비.
자암 김구(金絿, 1488~1534)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며, 조선초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대흥현감 계문의 아들이다. 김구의 자 대유(大柔), 호는 자암(自菴)이다.
자암은 1513년(중종 8)에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제학에 올랐으나, 기묘사화로 인하여 1519년(중종 14)에 개령으로 유배되었다가 수개월 후 죄목이 추가되어 남해로 이배되어 12년이란 긴 세월 동안 노량 적소에서 적거 생활을 하였다.
이때 남해찬가라 할 수 있는「화전별곡」을 경기체가로 지었고, 삼남 일대의 유림과 남해지역의 향사들과 가까운 교우관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가깝게 지낸 남해 향사의 인명도 『자암집』에 나온다.
자암 김구는 중종 28년(1533)에 사면되어 복관(復官)되었으나 이듬해인 1534년에 47세의 일기로 타계(他界) 했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자암 유허비는 숙종 30년(1704)에 김구의 6대 후손 김만화가 남해 현령으로 부임하여 조상의 흔적을 찾아 옛터에 유허비를 세우고, 서원 자리에 죽림서원을 세워 조상의 얼을 받들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배향하였으나, 죽림서원은 고종 원년(1864)에 대원군의 서당, 향사철폐령에 의거 훼철되었다. 비의 총 높이 276cm, 비신 높이 190cm, 너비 90cm, 두께 34cm이다.